[묵상]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코 12,13-17) - 연중 제9주간 화요일(2026.6.2.)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내 영혼에 찍을 인장은 내가 선택한다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 (마르 12,17)
찬미 예수님! 연중 제9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속으로는 날카로운 비수를 감춘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옭아매기 위해 세금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면 매국노로 몰릴 것이고,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자가 되는 진퇴양난의 함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얄팍한 속내를 꿰뚫어 보시고는 데나리온 은전 한 닢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언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
우리는 이 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의 지혜에 감탄하고 끝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세금은 국가에 잘 내고 헌금은 성당에 잘 내라는 윤리적 지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가장 두렵고도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저희 사제들은 검은 수단이나 목에 하얀 띠를 두른 '로만칼라' 셔츠를 입고 다닙니다. 이 옷은 단순한 유니폼이 아닙니다. 내 목을 하느님께 묶어두었다는 뜻이며, 나는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하느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움직이는 간판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입고 거리를 나가면 참으로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져 있고 차가 한 대도 안 지나가도, 감히 무단횡단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식당에서 밥이 늦게 나와도 짜증을 낼 수 없고, 운전하다가 누가 끼어들어도 욕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목에 둘린 로만칼라를 보고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하느님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행동 하나가 하느님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기에, 저는 꼼짝없이 거룩한 척이라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편안하게 술집에 가서 눈치 보지 않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떻게 할까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목에서 로만칼라를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왜 로만칼라를 뺄까요? 그 순간만큼은 '하느님께 바쳐진 존재'라는 그 거룩하고 무거운 인장(Seal)을 지워버리고, 잠시나마 세상에 속한 평범한 사람, 세상의 소유물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신자들이 제가 사제인 것을 다 아는 성당 안에서 사제복을 입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쉬운 일입니다. 오히려 저를 모르는 비신자들 앞인 세상 한복판에서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야말로 "나는 언제 어느 때나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진짜 신앙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멋있고 존경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면서도 손에 묵주를 쥐고 당당히 기도하며 가시는 교우분들, 대중교통을 탈 때도 꼿꼿하게 사제복과 수도복을 입고 계신 분들을 보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요즘은 작은 결심을 하나 실천하고 있습니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거나 술을 한잔하러 갈 때, 비록 자리에 앉아 먹을 때는 답답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칼라를 뺄지언정,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만큼은 반드시 사제복을 온전히 입고 들어가려 노력합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사제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하고, 저 스스로에게도 '너는 하느님의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 옷을 세상 앞에 드러내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내 이마에 '하느님의 것'이라는 인장을 쾅하고 찍기 시작하는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아주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내 자녀다, 너는 나와 같은 거룩한 신(神)이다"라는 영광스러운 인장을 선물로 내미십니다. 반면, 우리 안의 얄팍한 자아는 "너는 그저 쾌락과 돈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일 뿐이야. 그냥 네 욕망대로 편하게 살아"라며 세속의 인장을 내밉니다. 이 두 인장 중에서 지금 내 이마에 어떤 것을 찍을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라고 명령하신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억지로 빼앗아 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에게는 너희 자신을 스스로 선택해서 바칠 수 있는 위대한 자유가 있다. 그러니 짐승 같은 자아의 인장을 거부하고, 네 영혼에 하느님의 인장을 찍어 스스로를 하느님께 바쳐라!"라는 주권적 결단의 촉구인 것입니다. 제가 사제임을 자주 기억하고 그 옷의 무게를 견디려 애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를 하느님의 것이라고 선택하고 선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세상의 인장이 내 이마에 쾅 하고 찍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미사에 나와 거룩하게 앉아 있을 때는 누구나 다 하느님의 소유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영혼을 고난과 억울함이라는 십자가의 강렬한 '불빛'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내 이마에 스스로 어떤 워터마크를 찍었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원수를 향해 분노와 복수심을 뿜어낸다면 그는 스스로 짐승을 선택한 가짜입니다. 반면,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고통받는 순간에도 스스로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정체성을 꽉 붙잡고 이웃을 용서한다면, 불빛에 비친 그의 영혼에는 가장 선명하고 찬란한 '예수 그리스도'의 워터마크가 떠오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유권의 법칙은 이미 구약 성경 탈출기에 완벽한 알레고리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대사제인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예복을 짓게 하십니다. 그중에서도 대사제의 머리에 두르는 터번 앞쪽에는 순금으로 만든 아주 특별한 패를 매달게 하셨습니다.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장을 새기듯이 그 위에 ‘주님께 성별된 이’라고 새겨라. 아론은 그것을 이마에 달아라. 그 패가 늘 그의 이마에 달려 있어, 그 예물들이 주님 앞에서 호의로 받아들여지게 하여라." (탈출 28,36.38).
이마에 붙인 이 순금 패는 "이 사람은 하느님의 소유물이다"라고 선언하는 절대적인 인장이었습니다. 아론이 제단에 오를 때 수많은 죄와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이 인장을 이마에 매달고 나아갔을 때 하느님은 아론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그 이마에 빛나는 황금 인장을 보시며 이스라엘 전체를 용서하고 품어 안으셨습니다. (출처: 『주석 성경』 탈출기 28장).
우리도 일상 속에서 이 아론의 금패를 이마에 달고, 하느님의 인장을 세상 앞에 쾅쾅 찍어대야 합니다. 식당에서 밥이 나오면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성호를 크게 그으며 자랑스럽게 식사 전 기도를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영혼에 인장을 찍는 일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 복음을 두고 이렇게 명쾌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카이사르는 은전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에서 당신의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으신다. 은전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주었듯,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진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강해』).
오늘 하루, 나를 옭아매는 세상의 두려움을 십자가 앞에 모두 던져 버리십시오.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실 때, "그래, 너는 내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나의 귀한 자녀다!"라고 흐뭇하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세상 한복판에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십시오. 오직 내가 하느님의 소유물이라는 그 압도적인 자존감의 인장을 꽉 쥐고,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qGeUPcV82NU?si=Xfiu_iKax8PWSi-R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 12,17
To God what belongs to God. Mt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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