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 9,57-62)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5.10.1.)
‘소화 데레사’로 알려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1888년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결핵을 앓다가 1897년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수도 생활은 짧았지만 그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고행하였으며,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 그는 죄인들의 회개와,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병상 저서들은 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그를 시성하시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으며,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의지는 가치에서 나온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루카 복음 9장 57-62절을 통해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려는 세 사람의 대화를 묵상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루카 9,51)라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목적지가 있으면 지금의 비틀거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오늘은 그 목적지의 ‘가치’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는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 목적지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예수님의 ‘의지’를 결정합니다. 그 가치가 높을수록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부분은 바로 당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제자들의 의지입니다.
한 사람은 "어디든지 주님 가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자발적으로 나서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답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은 "주님, 제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라.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여라." (루카 9,60) 그리고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을 말리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자발적인 의지를 존중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이 '알고 따르도록'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끝까지 갈 의지가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려면 ‘의지’가 요구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결혼도 그렇게 산을 오르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의지 없이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무엇보다 결혼과 비유됩니다. 결혼은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으로 하나 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절대로 말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막연한 사랑만으로 결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선배 부부가 해주는 조언과 같습니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개인적인 자유를 포기해야 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해야 한다. 재정적인 어려움, 육아의 고됨, 시댁과의 갈등 등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준비가 되었느냐?" 이 조언은 결혼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환상 대신 현실을 직시하고 더 깊은 사랑으로 결단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 그 가치를 찾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한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산소통 없이 등정하고, 지구상의 8,000미터 이상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완등한 산악인입니다. 산소통 없이 8,000미터 이상의 고산에 오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문자 그대로 '죽음을 무릅쓴' 행위입니다. 폐가 터질 듯한 고통, 극심한 추위, 환각을 일으키는 고산병, 그리고 단 한 걸음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빙벽의 공포가 그를 덮쳤을 것입니다. 수많은 동료 산악인들이 8,000미터 이상의 고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 죽음의 영역, '데스 존(Death Zone)'을 아무런 기계적인 도움 없이 헤쳐나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저런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하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메스너는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길을 택했을까요? 그가 결국 정복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높은 봉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한의 고산에서 느끼는 고독과 죽음의 두려움,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 그는 이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섬으로써 '인간 정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확장하려는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산소통 없이 오르겠다는 그의 원칙은 '최고의 순수함으로 산과 하나 되고 싶다'는 이상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당장의 육체적 고통이나 생존 본능, 혹은 주변의 '무모하다'는 비난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신이 추구하는 '존재의 가치', 즉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두려움을 정복하는 순수한 정신의 승리가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이 궁극적인 가치가 그에게 멈추지 않는 의지를 선물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지금?’ 대부분의 명상 수행에서는 지금, 여기에 대한 가치를 최고로 둡니다. 그러나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제 복음에서 사마리아인들에게 화가 난 제자들과 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버지의 뜻을 이뤄주는 순간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습니다. 저도 하루 중 잠자기 전을 가장 가치 있게 여깁니다. 이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어온 습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잠자기 전에 오늘 얼마나 행복했는지 점수를 매겼습니다. 저에게 잠은 죽음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는 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내고 평생 모은 것을 바치고도 그분 앞에 겸손하게 서기 위해 천사와 씨름을 한 것과 같습니다. 그분 앞에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의지가 줄었습니다. 잠에 대한 가치를 그만큼 잃었던 것입니다. 많은 경우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자니 평안한 잠자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지가 평소에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술의 또한 커다란 해악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순간, 잠과 죽음. 이다음에 나와 셈을 하기 위해 예수님을 심판자로 만나야 하는 상황. 이 가치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잠을 통해 죽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 순간에 최대한 가치를 두고 살 때 감정의 휘둘림 없이 매일의 의지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https://youtu.be/EJHYi1ZAlmM?si=sze9Crz3_yHjUsNm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No one who sets a hand to the plow and looks to what was left behind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 Lk 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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