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일)_25 ] 새롭고 신나게 성공하는 하루 | 세계 4대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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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일)_25 ] 새롭고 신나게 성공하는 하루 | 세계 4대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by honephil 2025. 9. 21.

[9.21(일)_25 ] 새롭고 신나게 성공하는 하루 | 세계 4대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 9월 ]

 

< 4주 차 : 9.21 ~ 9.27, 2025 >

 

대체로 흐림

최저 14˚/ 최고 24˚C

바람 : 북북동풍(15˚) 1~3m/s, 돌풍 최대 6m/s

일출 6:17 am ~ 6:30 pm 총 일광 시간 12:13 (-1m)

강수량 0mm(-6) 예상, 가시거리 18km (+13)

습도 96%(+2, 이슬점 14˚)

그믐달_1% (-3) 월출 5:26 am(+63m) 월몰 6:09 pm(+22m) 총 월광 시간  11:33(-m)  거리 : 39.4만 km (-0.3)

기압 1008 (상승중, +8) hPa

Soli Deo Gloria

 

세계 4대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브로드웨이(Broadway)는 미국 뉴욕 맨해튼 일대에 위치한  지역이자 '전 세계 공연예술의 성지'로 유명하다. 면적 자체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공연 만으로 연간 약 2조 원의 수익을 창출과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 거리가 항상 현재와 같은 영광만을 구가하던 곳은 아니었다. 한때 뉴욕에서 가장 타락해 범죄와 쓰레기가 넘쳐나던 이 거리가 어떻게 전 세계가 동경하는 꿈의 무대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1732년 남부 맨허튼에 미국 최초의 상업극장인 낫소극장이 만들어진다. 그 뒤를 이어 여러 공연장이 들어서며 극장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세계 공연 문화에 한 획을 긋게 되는 새로운 장르, '뮤지컬'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1866년 세계 최초의 뮤지컬 '검은 옷의 악마'가 만들어지게 된다. 1880년 들어 맨해튼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극장가는 북쪽의 롱에이커 스퀘어 일대로 대이동 하게 되는데, 이 지역이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브로드웨이로 자리 잡게 된다. 1902년에는 뉴욕타임스 본사가 이전해 오면서 '타임스퀘어'가 탄생하였고 이곳은 오늘날까지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세기 들어서며 브로드웨이는 본격적인 공연문화의 핫플로 입지를 굳히는데, 호황기였던 1920년 대 후반에는 약 250개의 쇼가 공연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고,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침체를 겪게 된다. 이때 브로드웨이는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군인들을 노린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작품들을 선보이며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경쟁자였던 영화의 인기를 이용해 협업을 시도하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도입하게 되는데, 할리우드의 영화 스타들을 무대에 세우거나, 인기를 얻은 브로드웨이 작품을 영화로 제작하는 방식이 유행하게 된다. 1950-60년대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전설이 된 대표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브로드웨이는 할리우드 영화를 발판 삼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1960-70년대 들어서는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희피 문화'가 유행하게 되는데,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갖 논란거리를 만들었던 실험적이 파격적인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때 락 뮤지컬 <헤어>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초의 나체 공연이라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전쟁에 대한 거부와 저항,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주장했다. 또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예수의 마지막 7일'이라는 민감한 종교적 주제를 록 음악과 시청각적 강렬한 연출을 선보였다. 보수적인 대중들과 비평가들에게 반론이 거셌지만, 실험적인 공연들을 통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한층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1975년 뉴욕시의 재정위기로 브로드웨이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파산 직전의 뉴욕시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한동안 치안과 도시관리 기능이 완전히 붕괴되며 더럽고 위험한 곳으로 낙인찍히며 관광객들이 외면을 받게 되어 브로드웨이 극장가들도 경영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 결과 브로드웨이는 유흥업소와 퇴폐업소들이 성행하고, 매춘부와 노숙자들이 거리를 점령한 환락가로 전락했다.

결국 그래 12월, 연방정부가 조건부로 금융지원을 승인하면서, 뉴욕시는 도시 기능 회복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이때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시와 함께 'INY(아이 러브 뉴욕)' 캠페인을 1977년 진행하며 이미지 회복에 앞장섰다. 하지만 재정위기로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시 호황을 구가하던 영국 공연계와 협업하며 흥행이 입증된 작품을 수입해 무대에 올리며 돌파구가 마련하게 된다. 이때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이 잇달아 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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