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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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20.3.7.)

by honephil 2020. 3. 7.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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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벌악(賞善罰惡). 선한 이는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가톨릭의 네 가지 기본 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지니지 않은 이들에게도 당연한 내용이지만 성경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느님의 다른 모습도 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왜 모든 이를 똑같이 대하시냐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악인이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기다림은 악인에게 자비를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하지 않는 이들도 품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닮으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따라 거룩해지고,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따라 완전해지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실천의 바탕이자 행동의 기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냅니다.

한편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체험한 이들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 사랑과 자비를 손수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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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
 
복음: 마태오 5,43-48

외줄 타기를 하는 한 서커스 단원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다 강철 줄을 걸어 놓고 거기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손에 땀을 쥐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히 이리 건너오고 저리 건너가고 하면서 시종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사람들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타겠습니까? 내가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건너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 소년이 “저요!”하고 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소년을 어깨에 태우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겁나지 않던?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지?”
그 소년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분이 제 아버지거든요!”

자녀는 부모를 믿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과 함께라면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시키는 것이라면 분명 가능하니까 시키는 것이고 불가능하더라도 도와주실 것이니까 시키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완전해지는 길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원수가 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분명 나는 그를 원수로 여기기 때문에 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유일한 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그것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나는 못 해도 예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분 등에 타기만 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그분은 성체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분께 맡기지 않으면 내 안에 그분이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한 여행자가 관광 중에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물속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러나 곧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이제 난 죽었구나!’ 하며 자포자기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그를 세게 받쳐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이 물에 둥둥 떴습니다. 그가 빠진 바다는 사해였던 것입니다. 사해는 다른 물과 달리 염분과 다른 광물들이 많이 섞여 있어 물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누워 있기만 하면 둥둥 뜨게 됩니다.
 
우리 안의 예수님은 마치 사해와 같습니다. 사해에 있으면서도 빠져 죽을 걱정을 한다면 자신이 사해에 있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여 어쩔 줄 모르는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냥 맡기면 됩니다. 이것이 성체성혈을 먹고 마시는 신자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의 기분을 상상해봅시다. 하느님을 잉태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신 데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못 해도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우리는 진정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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