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요한 12,1-11) - 성주간 월요일 (2025.4.14.)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기름을 준비한다는 뜻은? >
오늘 복음에서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예수님께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발라 드립니다. 2~3천만 원 상당의 상당히 고가인 향유입니다. 이것을 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요한은 이렇게 주석을 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 아끼는 사람이 이웃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요? 형제를 사랑하려면 부모를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형제 사랑은 반란이나 저항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먼저 봉헌하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마리아가 하는 행위가 당신 장례에 대한 준비라고 하십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운명은 자살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골고타에서 견딜 수 있었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 살아생전에 미리 그분의 죽음을 내다보고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영광스럽게 하는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입니다.
12세기 중반 영국에서, 헨리 2세와 토머스 베킷은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젊은 시절 함께 어울려 다니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이들은 마치 형제와 같았습니다. 헨리 2세가 영국의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뢰하던 친구 베킷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베킷이 자신을 위해 교회를 통제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베킷은 주교가 된 후 변했습니다. 왕의 친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종으로서 교회를 보호하는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왕은 이에 분노했습니다. "누가 저 말썽쟁이 사제를 내 앞에서 없애주지 않겠느냐?" 헨리 2세가 이 말을 화난 상태로 내뱉자, 충성스러운 기사 네 명이 그것을 왕의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170년 12월 29일, 이 기사들은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찾아가 베킷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고, 교회는 베킷을 순교자로 인정하여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문제는 그 후였습니다. 베킷의 죽음을 사실상 묵인한 헨리 2세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양심의 고통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영국과 교회, 그리고 온 유럽의 비난 속에서 결국 헨리 2세는 참회의 표시로 맨발로 걸으며 베킷의 무덤이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안으로 들어설 때조차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묵인한 베킷의 죽음이 그를 교회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대성당 밖에서 무릎을 꿇고, 수도사들을 시켜 매질과 회초리를 맞으며 통곡하며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교회와 영국 시민들도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장례를 위해 기름을 준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 죽음을 긍정한다는 뜻입니다.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긍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분께 영광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그분이 부활하심을 견뎌낼 수 없는 양심의 가책으로 남았습니다.
베드로도 생각해봅시다. 베드로는 어땠나요? 베드로와 유다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실 때 다 외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돌아왔고 유다는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기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예수님 살아생전에 그분을 위해 분명히 기름을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분과 함께 죽겠다고 다짐하였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긍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성당에서 십자가가 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위해 왜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시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기억합시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묵인했는데, 그 누군가를 높여주는 세상에서는 함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전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마리아가 아닌 유다의 운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을 공경하는 찬미의 기름을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https://youtu.be/I83PPPXLpos?si=5lyc_rfep80xv1Hy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이사 42,3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nd a dimly burning wick he will not quench. Is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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