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마르코 2,1-12)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202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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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마르코 2,1-12)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2025.1.17.)

by honephil 2025. 1. 17.

[묵상]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마르코 2,1-12)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2025.1.17.)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으며,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356년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용서하려는 노력이 은총을 받는 지름길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주시며 사람의 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주어졌음을 보여주십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을 통해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를 치유한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나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 더 큰 이익이 오지 않으면 항상 그렇게 한 일을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큰 이익이 주어지지 않으면 용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일가족을 다 죽인 유영철을 용서한 고정원 씨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용서하지 않으면 천국에 있는 자신의 아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기 위해 매일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용서의 힘을 주심을 넘어서서 마음의 평화와 기쁨도 주십니다. 용서는 마치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고 일만 탈렌트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만 탈렌트가 생기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수백만 원을 탕감해 주고 수조 원을 버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오랜 자신과의 싸움을 전제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되고 그 성령의 힘으로 용서를 넘어서는 큰일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큰일을 한 사람치고 이 용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성령의 힘으로 병을 치유해 주시는 것이 이러한 의미입니다. 

 

존 프랜시스(John Francis)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만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를 목격한 후, 환경 파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는 모터가 달린 교통수단 사용을 중단하고, 걷기를 통해 환경 보호를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갈등과 오해를 샀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싸우다가 결국 침묵하기로 합니다. 침묵은 용서를 위한 기초작업입니다. 그 침묵을 그는 무려 17년간을 했습니다. 

 

이러한 침묵의 기간 동안 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계를 깊이 숙고했습니다. 인간관계도 환경의 일종인데,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또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17년 동안 침묵하면서 전 미국을 횡단하며 환경학 박사학위까지 땄습니다. 그리고 UN에서 일하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모두를 용서하고 말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존 프랜시스의 이러한 경험은 용서가 단순히 타인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책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에서 이러한 내면의 여정과 용서의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타인을 용서함으로써 환경 운동가로서의 길을 걸었으며, 전 세계에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대목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중요하고 짧은 기도에 용서라는 작은 주제가 들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우리가 평생 해나가야 할 것이고 그 용서를 통해 우리의 양식인 성령께서 활동하게 하심을 알고는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행동을 주저하는 이유는 용서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먼저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행동할 힘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지 못 할 일이 없는데, 성령을 얻는 방법에서 용서만큼 완전한 방법은 없습니다.
https://youtu.be/gRhsp4WZs5Y?si=ApGiOa_9gbFd9cN5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히브 4,11

Let us strive to enter into that rest. Heb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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