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요한 1,19-28)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5.1.2.)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방 카이사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뛰어났다. 370년 무렵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이단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참고하며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교리와 설교에 탁월하여 ‘신학자’라고 불렸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오늘의 묵상 ||||||||||||||||||||||||
< 요한은 기본기이고 그리스도는 목표다 >
오늘 복음인 요한 1장 19-28절은 요한 세례자가 자신을 메시아가 아니라,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겸손히 밝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자신이 길이며 기본이며, 예수님이 궁극적 목표임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기본과 목표의 관계는 우리의 신앙과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기본이 없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신앙에서 기본은 회개이고 목표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성경뿐만 아니라 현대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녀 체력』의 저자인 이영미 작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건강을 돌보지 않아 삶이 무너졌던 경험을 공유합니다. 가족과 일의 부담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지면서 어느 것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깨닫고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마라톤과 사이클, 수영 등 철인 삼종 경기에서 보통 남성들을 이길 정도입니다. 그녀에게 체력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족과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녀는 “몸을 강화하니 마음도 따라오고, 목표가 달성 가능해졌다.”라고 말합니다.
이 교훈은 성경의 중요한 원칙과도 일치합니다. 코헬렛 3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제때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준비의 시기가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바로 기본입니다.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기본을 다져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노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 9-22절에서 노아는 홍수가 오기 전에 방주를 만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의 임무는 막대했지만, 그는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하느님의 지시를 따라 하나하나 방주의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준비 덕분에 방주는 폭풍을 견뎌내고 가족과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목자로서 기본을 다졌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17장에서 골리앗과 맞설 때 다윗은 최신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어린 시절 길렀던 용기와 기술,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기본기를 통해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마태오 복음 7장 24-27절의 예수님 비유에서 현명한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가 나옵니다. 현명한 건축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폭풍이 몰아쳐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 육체적, 정서적 모든 영역에서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시 이영미 작가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그녀는 기본을 간과했을 때 삶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깨달았습니다. 건강, 신앙, 관계 등에서 기본을 무시하면 불균형과 좌절을 겪게 됩니다. 세속의 지혜도 이 진리를 가르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노자) 또는 “한 번의 예방은 열 번의 치료보다 낫다.”(벤저민 프랭클린)라는 말처럼, 기본적인 노력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서도 이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성사를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러한 기본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거나 목표인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삶은 이러한 훈련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언자로 존경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말이다”(요한 1,23)라고 선언하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축구를 하면서 기본의 중요성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축구의 기본은 같은 팀과 협력하고, 공을 잃지 않고 패스하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구의 목표는 골을 넣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막상 경기에 들어서면 기본기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골을 넣으려는 생각만 합니다. 그러면 경기당 한두 골은 넣을 수 있습니다. 실수하려 하지 않는다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습니다.
기본기는 평소에 매일 다지는 것이고 실전에는 목표에 집중해서 사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는 말을 자주 되풀이합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랑이 되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막상 사람을 만날 때는 온유하고 겸손한 훈련된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아직은 멀었지만, 이렇게 사랑에 조금씩 프로가 되어 갑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이해합시다.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고 건강, 신앙, 관계의 기반을 다시 세우며 하느님의 계획을 위한 길을 준비합시다. “기본을 알면 이미 전문가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모르고 기본에만 집중하거나, 아니면 기본이 없는데 목표만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을 마스터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두신 목표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길도 준비하며 그들을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https://youtu.be/lQqC3MLrxog?si=94TwHNxvcYB9Fbud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1요한 2,24
Let what you heard from the beginning remain in you. 1Jn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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