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 25,1-13)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02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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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 25,1-13)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023.9.01.)

by honephil 2023. 9. 1.

[묵상]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 25,1-13)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023.9.01.)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정하였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현명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이유 >



오늘 복음은 현명한 처녀 다섯과 미련한 처녀 다섯의 이야기입니다. ‘다섯’은 보통 육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기름이 주어지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곧 성령과 성자가 합하여 ‘일곱’이 되는 것입니다. ‘7’은 하느님 자녀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명한 처녀들은 왜 기름을 나누지 않았을까요? 그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도움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도움의 은총은 생명의 은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은총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은총이 가득하다고 하셨을 때 그 은총은 다른 이와 나눌 수 없습니다. 그 은총으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입니다. 동방 박사들도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오직 동방 박사들만이 별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은총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도움의 은총은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나의 노력으로 챙겨야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준비물입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그것들을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얼마든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지 못하는 지혜는 언제나 나누기에 부족한 지혜입니다. 참 지혜는 좋은 감정이 꺼지지 않게 합니다. 

아이유와 이선균 주연의 ‘나의 아저씨’에는 현명한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등장합니다. 동훈은 학교와 회사 모두 입사 후배에게 밀려 말단 과장인 불쌍한 남자이고, 지안은 빚을 갚기 위해 위장 취업한 불쌍한 아이입니다. 정당방위이기는 하지만, 아이유는 어렸을 때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지안에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아이에게 지안은 끊임없이 돈을 갚아야만 합니다. 

 

동훈의 아내는 동훈을 몰아내려는 후배와 바람을 피웁니다. 동훈은 그것을 알면서도 가족을 지키고 회사에서 버티기 위해서 참아냅니다. 가족까지 무너지면 더는 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동훈의 후배 대표이사에게 지안은 이용당합니다. 자신을 믿고 써 준 동훈이었지만, 당장 돈이 더 급했기 때문입니다. 동훈의 모든 것을 녹취하고 심지어 동훈을 꼬시기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대표이사에게 받은 돈으로 지안은 빚을 갚아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며 동훈은 자신이 뽑아준 지안이 살인을 저질렀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동훈은 자신과 같은 불쌍한 처지인 지안을 오히려 지지해 줍니다. 자기를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의 등에 칼을 꽂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안은 점점 동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됩니다. 

 

만약 지안이 동훈을 도청하지 않았다면 동훈의 마음을 몰랐을 것입니다. 지안은 동훈의 아내에게 가서 동훈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동훈의 아내까지 용서를 빌게 합니다. 동훈의 마음을 알면서도 바람을 피운 동훈의 아내와 자신을 희생하여 동훈을 구하려는 지안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련한 처녀와 현명한 처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동훈의 아내에게는 감정이 없었습니다. 비로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맞을 준비가 안 된 미련한 처녀였습니다. 반면 지안은 미안함과 감사,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키워갔습니다. 이는 더 알아감을 통해 생겨나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동훈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정은 나누어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감정 없이 바치는 제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훈의 아내가 동훈에게 밥을 차려줘도 그것은 올바른 제사가 아닙니다. 구약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제사는 번제, 곡식제, 친교제, 보상제, 속죄제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하느님께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의 마음이 들어있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나아가서 사랑의 마음까지 성장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 감정이 별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만드는 세상의 지혜에도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창조자를 알거나 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미안함과 감사, 사랑이 줄어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알아보게 만드는 지혜를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미련한 처녀들처럼 “나도 너희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을 때 그러한 새로운 지식들을 나누려고 해 보았습니다. 누구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화를 내셨고 형들은 다 아니까 너나 잘하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도움의 은총은 자기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상인에게 가서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사랑이 증가할 수 있는 지식이 떨어지지 않게 꾸준히 살 수 있도록 합시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나누어줄 수 없으니 우리가 키워가야 합니다. 감정 없는 전례가 되지 않게 합시다. 부모가 차려준 음식을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키우며 먹읍시다. 이것이 우리 기름을 꺼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https://youtu.be/W6EM9WwSJKY?si=6GvpMbyi0mavmLZd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마태 25,4

The wise brought flasks of oil with their lamps. Mt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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