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마태오 17,1-9)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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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마태오 17,1-9)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23.8.6.)

by honephil 2023. 8. 6.

[묵상]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마태오 17,1-9)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23.8.6.)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1-2).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공관 복음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이 말씀에 따른 것이다.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기리는 축일이다.
오늘 축일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사십 일 전에 지낸다. 교회의 전승에 따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사십 일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시고자 거룩한 변모의 표징을 드러내셨다. 1457년 갈리스토 3세 교황이 로마 전례력에 이 축일을 도입하였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사도들은 산에서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들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줄 때에,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빛나는 모습을 체험하고 주님의 증인이 됩시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기도의 목적>

 

    오늘은 주님 변모 축일입니다. 주님 변모 축일은 기도에 대한 예시입니다. 기도의 장소는 이스라엘 전통 상 ‘높은 산’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모세와 엘리야를 만납니다. 모세는 진리이고 엘리야는 은총입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 곧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주었고,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제물 위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미사 때의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미사나 기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변모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변모하기 위함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악령 들린 아이를 고쳐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그를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마태 17,17)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로 이 세상을 참아내고 치유하기 위한 힘을 얻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그 상대를 끊임없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나의 죽음입니다. 미워하는 내가 죽지 않으면 용서가 안 됩니다. 내 안에 그 미움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결국 나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내려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오늘 복음이 이 기도의 올바른 목적을 말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기도의 목적을 잘못 알고 헛된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인도 수도사가 18년이 걸려서 갠지스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자랑처럼 떠드는 제자에게 스승은 묻습니다. “자네는 18년 동안 18루피(갠지스강 건너는 뱃삯)를 벌었네.” 

 

    기도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얼마나 남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 자신이 죽었는지, 얼마나 더 그리스도로 변모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워룸(2015)은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남편은 직장에서도 돈을 횡령하고 외도하려고 하며 가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미워 옆집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 옆집 할머니는 왜 교회에 다니면서도 기도는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기도는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싸움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는 것입니다. 

 

    워룸은 전쟁에서 지휘관들이 하는 회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할머니는 집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남편과 싸우지 말고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과 싸워 하느님께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옷장에서 자신을 위한 기도가 적힌 것을 보고 아내가 이미 자신의 외도 사실까지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깊이 회개하고 아내와 딸에게 사과합니다. 

 

    기도로 싸워야 할 대상은 은총의 가치를 모르는 나 자신입니다. 

제가 부모님의 굳은살을 보았을 때 라면 하나도 부모님이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먹는 것은 부모님의 살과 피였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자 불만 가득했던 내가 죽고 부모님의 뜻을 따라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순종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고 계신다면 나도 기도할 때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은총의 가치를 알고 순종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은총을 많이 받았지만, 그 은총의 값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자에 빠진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리게 만듭니다. 성령의 불이 꺼진 것입니다. 눈도 뽑힙니다. 그제야 삼손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총이 당신 눈을 빼서 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되자 이제 그분의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가 생깁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미움을 함께 묻어 버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가 죽어야 미움도 죽습니다. 그리스도가 사셔야 용서와 사랑이 성취됩니다. 우리는 기도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 완전히 그리스도로 변모하여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fO4IFArngmE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마태 17,2

His face shone like the sun and his clothes became white as light. Mt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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