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코 2,13-17) - 연중 제1주간 토요일(2023.01.14.)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도 주님께서는 다시금 우리 죄인들을 당신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죄인’에 대한 개념은
참으로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죄인은 의인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
거룩한 유다 전통을 따르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은 회당 출입이 금지되었고, 일반 사람들과의 접촉도
불가능했을뿐더러,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방인 노예와 동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랍비들은 죄인들을 ‘회개 불가능한 존재’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존재’로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이런 죄인이란 빨간 딱지를
가슴에 달고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는’(마르코 복음 2장 14절) 이란
표현을 참고했을 때, 보통 세리가 아니라 대단한 세리,
카파르나움에서 힘 꽤나 쓰던 세관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였던 카파르나움에서 통행세 징수를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꽤나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레위, 꽤나 많은 재산을 모았던
레위였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징그러운 벌레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도 없었고,
회개의 가능성조차도 부여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리 레위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제거 대상으로 여겼는데, 그분께서는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스스로를 세상과 하느님의 민폐로 여겼는데,
그분께서 자신을 용서하시고 치료하실 뿐 아니라
당신 제자단에 가입시켜 주셨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던 나를 눈여겨보시고, 나에게 다시 한번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의 은혜가 너무 커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 세리들, 죄인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한바탕 큰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다시금 우리 죄인들을 당신 제자로 부르십니다.
어째서 저 큰 죄인들, 부당한 죄인들을 제자로 부르시냐고
따지는 이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코 복음 2장 17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히브 4,12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effective,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Heb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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