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루카 5,33-39)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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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루카 5,33-39)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1.9.3.)

by honephil 2021. 9. 3.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독서 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찬가’로 잘 알려진 부분입니다. 요한 복음의 서문과도 비슷한 이 찬가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또한 그분의 ‘십자가 죽음’은,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창조물 사이를 화해시키시는 구원자이심을 알려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알아 갑니다. 또한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안에서’ 살아갑니다(콜로 2,6 참조).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회개와 세례를 통한 희망은, 세상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믿음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는 비유와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복음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며 행동하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기”(2016년 1월 18일 성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를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 난 신자들은 ‘성령의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 그분의 은총으로 진리를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는 신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

 

<네 생각과 행동이 옳을 수는 있다. 그러나 너는 옳을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비난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그러나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서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은 오히려 실례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헌 옷을 꿰매기 위해 새 옷을 찢거나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려 하며 옛것만 좋다고 고집하는 이들이라고 비판하십니다.

 

    단식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광야에서 기도하실 때 40일 동안이나 단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먹고 마시는 제자들을 두둔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매년 한 번씩 사탄은 자신의 졸개들에게 상을 주어 더 완벽한 방법으로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게 만드는 모델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마귀들은 서로 미움과 사기, 방탕과 무절제, 그리고 무기력과 열등감 등을 일으켜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해의 대상을 탄 마귀는 이런 말을 한 늙은 마귀였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사람들에게 항상 바른 생각만 심어주었다오.”

 

    다른 마귀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무릎을 ‘탁’ 치며 이것이 현대에 꼭 필요한 방법이라고 앞으로 모두 그 마귀를 따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귀가 한 영혼에 했던 일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8남매 중 맞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 대신 자신을 도와 농사를 지을 것을 권했습니다. 학비를 내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마귀는 그의 마음에 속삭였습니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야. 네가 열심히 노력만 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나올 수 있어. 그러면 동생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불가능은 없다고 몇 번이나 되뇌이며 주경야독하여 서울 소재 일류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 빠른 승진을 거듭한 끝에 젊은 나이에 임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와 가족에게 신경 써 줄 시간은 갖지 못했습니다. 이때 마귀는 또 속삭였습니다.

 

    “괜찮아. 아버지의 의무는 가족이 돈 걱정 안 하게 하는 데 있어. 그러려면 넌 열심히 일해야지. 언젠가는 아내와 자녀들이 다 알아줄 날이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열심히 일했고, 그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아랫사람이건 아내 건 자녀들이건 더 잘할 수 있다고 다그쳤습니다. 자신이 했으니 그들도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아내도, 자녀들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되었지만 50대 중반에 신장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3년간 노력한 끝에 더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귀의 속삭임에 따라 그는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뉴스에서는 좋은 약이 많이 나오고 있다던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지금 나보고 그냥 이렇게 죽으란 말입니까? 그게 의사라는 사람이 할 소리입니까? 돈은 상관없으니 예전에 썼던 항암제를 다시 써 주세요.”

 

    의사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도 막무가내여서 몇 달 동안 그 약을 투여했습니다. 그러나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습니다. 이 3년 동안 마귀는 또 속삭였습니다.

 

    “넌 할 수 있어.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모든 게 무너지는 거야. 넌 이겨낼 수 있어.”

 

    이렇게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 야근도 하고 외국 출장도 다니며 건강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이미 뼈까지 전이된 암세포로 고생하지 말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 통증을 좀 줄이며 죽음을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또 속삭였습니다.

 

    “넌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아직 할 일이 많아. 빨리 주식 시세를 한 번 봐봐. 네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어.”

 

    그는 그렇게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도 30여 년 그와 함께 살면서 너무 힘들었고, 아내로서 의무를 다한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임종을 지켰지만 실제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서울대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나온 사례를 마귀를 개입시켜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외롭게 죽어간 그 사람은 틀린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수 있습니다. 다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이고 열심히 살아서 가족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엔 그의 주위에 아무도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현대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입니다. 그들이 지킨 율법은 틀린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습니다. 옳은 법을 지키면 다 옳을까요?

 

    만약 개가 밥상에서 인간과 함께 식사하려 한다면 옳은 일일까요? 본인이 개인데 사람처럼 행동하려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개에게 어떤 일을 시킬 때, 그것이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옳고 그름은 내가 하는 행위에 달리지 않고 내가 누구의 명령을 따르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율법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은 옳아 보여도 틀렸습니다. 주인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주인과 개가 있다면 개는 주인의 뜻을 따를 때만 옳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아를 주님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마귀의 속삭임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이 옳았더라도 하느님의 의도와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진리’이고 나는 ‘악’이며 ‘거짓’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길도 모르고 진리도 없으며 죽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안에 옳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진리라고 하시는 아무 의미도 없어집니다. 나도 진리인데 뭐하러 오셨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삶의 옳고 그름은 어떤 옳은 일을 했느냐가 아닌,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묻고 실천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면서까지 “난 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마귀의 가장 악랄한 계책입니다.

 

    내 행동이 옳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옳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뜻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은 하느님 뜻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과 행위가 하느님 뜻 안에 있을 때만 내가 옳게 됩니다. 어차피 주님만이 빛이시고 진리이십니다.

 https://youtu.be/VqGh7tM0cdk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루카 5,33-39)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1.9.3.)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콜로 1,17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C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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