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오 14,22-36) -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20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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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오 14,22-36) -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2021.8.3.)

by honephil 2021. 8. 3.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유령이다!” 두려워 소리 지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얼른 나서서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물에 빠집니다. 왜 물에 빠지게 될까요? 성경은 베드로가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져 물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오너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향하던 베드로의 눈은 오로지 예수님만을 향하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과 함께 물결이 일어 그의 뺨을 때리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이 아닌 거센 바람 쪽으로 눈을 돌렸을 것입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아, 내가 물 위를 걷고 있네…….’ 하며 예수님을 잊습니다. 갑자기 발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살려 주십니다. 물론 한마디 하시지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물 위를 걷던 베드로 사도가 거센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진 것처럼, ‘나도 사제로 살면서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보는 순간 유혹에 빠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내 안도의 한숨이 쉬어집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베드로 사도가 소리친 순간, 예수님께서는 바로 손을 잡아 구해 주셨습니다. ‘나도 예수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치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물론 한 말씀 듣겠지만, 매달리기만 하면 그분께서 살려 주실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한 말씀은 “왜 의심하였느냐?”입니다. 이 말씀은 “왜 마음이 둘로 갈라졌느냐?”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삶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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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지려는 마음을 참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물 위를 걷는 베드로’입니다. 여기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보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가 더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며 자신도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만일까요? 배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교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다 할 수 있고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삶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보통 의사들처럼 살았다면 그 큰 믿음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었을까요? 혹은 마더 데레사 성녀께서 평범한 수녀님으로 남기를 원했다면 지금 사랑의 선교회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2센트만 가지고 커다란 병원을 지으려 했습니다. 평범한 성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함을 거부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닮아가려 하는 우리 삶도 배 위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기 위해 물에 빠져 창피를 당하는 두려움을 무릅쓸 수 있어야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평범함을 넘어서는 일이 ‘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은 것처럼 나중에는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이 낫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병을 고치겠다고 무작정 안수를 주었다가 병이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다고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을 느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저는 이것 때문에 성당 내에서도 치유의 미사나 기도회가 많이 열려야 하고 사제들도 할 수 있다고 믿고 기름을 바르고 안수를 해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치유되지 않아서 받을 수 있는 창피를 이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일입니다. 일본의 해군 장교 ‘가와가미 기이치’는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와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군인들을 보면 “저것들 때문에 우리가 패전했다.”라고 손가락질하며 노려보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고통의 시절을 보내다가 급기야 그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어 마치 식물인간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호치라’ 씨의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호치라 씨는 기이치 씨에게 물었습니다.

 

    “기이치 선생, 낫고 싶으세요?”

 

    “예, 낫고 싶죠.”

 

    “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했던 기이치 장교는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니 입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루에 일만 번씩 하셔야 합니다. 감사하려는 마음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병석에서 자신 병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감사라는 말을 되뇌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의 말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이 사라지고 마음도 평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도 평화로워지고 표현도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를 대하는 가족들도 게이치 씨의 변화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막내아들이 감나무에 홍시가 발갛게 익은 것을 보고 ‘저 홍시를 아버지께 갖다 드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들은 잘 익은 홍시 두 개를 따서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감 드세요.”

그때 아버지 기이치 씨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앗, 이럴 수가!”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던 손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아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손에서 일어난 이 기적은 그 이후 팔, 다리, 몸 구석구석까지 이어졌습니다. 경직되었던 그의 몸은 마치 마법이 풀리듯 감사의 주문으로 풀리고 있었습니다.

 

    기이치 씨가 베드로였다면 호치라 씨는 예수님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호치라 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는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이 하는 것은 그도 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말을 기이치 씨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그도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군인 장교가 그런 말을 믿다니요. 그러나 그는 믿었고 물 위를 걸었고 드디어 의사처럼 건강해졌습니다.

 

     이렇듯 믿으면 평범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늘의 사람처럼 살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겠지만 믿음이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고 하늘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됩니다.

 

    두 발로 걷는 개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본인이 인간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연습을 하여 두 발로 걷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평범함을 넘어서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임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사람이 그럴 수 없다고 비웃는 사람들의 모습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배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믿는다면 평범함을 거부하십시오. 믿으면 저절로 평범함에서 벗어납니다. 평범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참지 마십시오. 골을 넣고 항상 성호를 긋고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는 메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가 예상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더는 제가 아닐 것입니다.”

 

https://youtu.be/zSJFhljhkj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오 14,22-36) -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2021.8.3.)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 14.28

 

Lord,

if it is you,

command me

to come to you on the water.

Mt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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