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

[묵상]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모든 성인 대축일 (2020.11.1.)

honephil 2020. 11. 1. 05:28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 이 축일은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을 9세기 중엽 오늘날의 11월 1일로 변경하였다. 교회는 이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의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간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 연합(UN)은 해마다 행복 지수를 나라별로 조사하는데 국내 총생산,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타인에 대한 관대함, 사회의 부정부패 수준 등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들로 개인이 느끼는 행복을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의 이 선포는 그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한, ‘나’ 자신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만일 지금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자비를 실천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여 평화를 이루는 데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또한 행복을 위한 의로움의 추구가 부족하거나,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할 만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열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이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행복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바꾸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행복 선언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위한 새로운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듣고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간 이들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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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오늘은 위령성월의 첫날이며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은 본래 동방교회에서 지내던 축일이었는데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에서도 지내게 되었습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은 9세기 중엽 11월 1일로 옮겨졌습니다. 11월 위령성월 첫날로 이동한 이유는 죽음 앞에서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만들어진 것은 그 창조자가 지향한 ‘목적’을 지닙니다. 스마트폰, 자동차, 비행기 등 그것을 만들 때 그 만들어진 것 안에 만들어진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그대로 사용될 때 창조자는 그것을 위해 충전도 시켜주고 연료도 넣어주고 고장 나면 고쳐 주며 오래 사용될 수 있도록 돌봐줍니다.

 

      이런 강론을 하면 나이 든 분으로부터 청년들까지 “전 아무리 생각해도 제 꿈을 찾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꿈, 내 삶의 의미와 목적. 이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희미할 뿐입니다. 구약의 요셉도 짚단이나 해와 달,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을 뿐 구체적으로 하느님께서 그를 어떻게 계획하여 쓰실 것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나의 꿈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꿈이 명확하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희미한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대학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가 딸을 유학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네가 공부에 파묻히는 걸 원치 않는다. 아빠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 네가 좋아하는 걸 해.”

멋있게만 보였던 이 말을 하고 있던 아빠는 딸의 질문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는 좋아하는 걸 찾았어?”

 

      한 직장인으로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감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기만 한 자기의 모습에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은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해 눈치 보여도 직장에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한 인생일까요? 좋아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삶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좋아하는 일을 명확히 아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오늘 할 일이 명확해지고 하루를 힘차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과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됩니다.

 

      유재석씨에게 삶의 목표를 물을 때 자신은 목표가 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을 위해 온 힘을 다했을 뿐입니다. 촬영이 있는 전날엔 술도 마시지 않고 상태 조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촬영 때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지는 일을 위해 자신과 싸움을 지속한 결과 지금의 유재석씨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늘의 원로는 요한에게 성인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며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냐?”라고 묻습니다. 요한은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합니다. 원로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누군가의 피가 나에게 떨어지면 나는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제가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인지, 아닌지 모를 때는 저 자신과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볼 때는 허물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피로 자기 겉옷을 빠는 일입니다. 결국, 누군가의 피가 일으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싸움입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그 사람 안에 누군가의 피가 떨어졌기 때문이고 그 피가 그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뒤로 돌아가지는 말 것. 그 뒤란 이전의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싸워 겸손해지고 절제할 수 있고 가난한 마음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싸움은 필연적으로 이런 열매를 맺게 만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자가 준비되었다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과 싸움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알아서 성인이 되는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성인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세속-육신-마귀의 본성과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싸울 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유진 변호사’는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면 보이지 않던 꿈이 보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수년 동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여전히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일어나보니 꿈이 보인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쓰고 유튜브를 올립니다. 그렇게 변호사를 하면서도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먼저 나와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꿈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새벽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녁에는 에너지가 소진되어 아무 일도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에너지도 있고 다른 일이나 사람들로부터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운동하고 글을 쓰고 유튜브도 하고 명상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저 반복되는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꿈을 찾지 못했다고 시간만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자신과 싸우면 됩니다. 걷던, 뛰던, 날던 일단은 박차고 일어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일을 맡기려는 사람은 바로 일어나려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과 먼저 싸워봅시다. 그러면 꿈이 보일 것이고 꿈이 보이면 날마다 보람 있게 될 것입니다. 성인은 큰 업적을 이뤄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과 작은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겉옷을 빠는 삶입니다.

https://youtu.be/wInYcfSeF7s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모든 성인 대축일 (2020.11.1.)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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