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부활 7주간 월요일 (2020.5.25.)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심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믿음이 삶의 행복이나 성공으로 이어지면 좋을 텐데, 오늘 복음은 오히려 제자들이 흩어지고 고난을 겪게 된다는, 다소 불행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 가는 과정과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여정이 신앙생활일 텐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삶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세상의 유혹뿐만 아니라 어쨌든 살아 내야 할 현실의 무게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허황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은 세상의 힘겨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안에 포탄처럼 떨어져 터져 버리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른바 ‘육화’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은 지금 짊어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 내는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합니다.
팍팍한 삶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모두가 썩었고 악하다는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셨고 또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용기를 내는 일이지, 팍팍한 삶 말고 편안한 삶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일이 아닙니다. 팍팍한 삶 한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주셨지요. 삶이 팍팍할수록, 악할수록, 힘겨울수록,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오늘도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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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거절당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젊은 시절 조금만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지금 삶은 매우 다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배우자가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당할 두려움 때문에 연애도 못 하고, 취직도 못 하고, 사업에도 성공을 못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삶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입니다.
‘거절당하기 연습’의 저자 지아 장도 이러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앱 개발 회사를 설립하여 투자를 받기 위해 완벽한 제안서를 준비했습니다. 투자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 여길 정도로 자기 딴에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투자가 거절당했고 그는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는 거절당하는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삼촌에게 운동화에 바퀴를 달면 어떻겠냐고 했다가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핀잔받고 나서 영어단어 외우는 일에만 열중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00번 거절당하는 연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100달러를 꿔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거절당하였습니다. 얼굴이 붉어졌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빨리 다른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거절당하는 두려움은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것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넛을 올림픽 모양으로 해 달라고 했을 때 어떤 매장에서는 그것을 해 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제안을 하며 그것을 해 주면 자신도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거절당함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자기 그림자를 피하려면 더 큰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누구도 빠져보지 못한 수렁과 같아서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게 만듭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 두려움으로 들어가 그 두려움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도 용기를 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우리를 노예로 삼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자존심을 지켜야 하며, 성공해서 자신을 비웃는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 합니다. 그런 굴레 속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실망하게 만들기 싫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반대로 돈이 없어도 되고, 자존심이 상해도 되며, 바보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누군가가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시고 멸시받으시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벌거벗겨져 못 박히셨습니다. 죽음의 공포까지 이기게 해 주시기 위해 죽음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두려움 속으로 자유롭게 뛰어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영화 ‘그것’(2017)은 마을에 숨어 사는 광대와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각자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떤 아이는 엄마를, 어떠한 아이는 괴롭힘 당하는 것을, 어떤 아이는 화재 때 부모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어떤 아이는 문둥병자를, 어떤 아이는 무서운 얼굴의 괴물을 무서워합니다. 광대 모습을 한 괴물은 아이들의 두려움을 먹으면 더욱 커지고 강력해집니다. 아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당당히 맞섭니다. 그리고 결국 괴물을 물리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페니와이즈라는 이 괴물은 그들에게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서워!”
이 세상엔 우리 두려움을 먹고사는 ‘그것’이 존재합니다. 그냥 세상 자체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일으켜 우리를 자신의 힘 안에 가두어놓으려 합니다. 이 세상을 이기려면 두려움과 맞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 들어가셨고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용기만 내면 됩니다. 그러면 진리로 자유롭게 됩니다. 진리로 두려움을 두렵게 만듭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