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

[묵상]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부활 제2주간 월요일(장애인의 날) / (2020.4.20.)

honephil 2020. 4. 20. 08:02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8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독서는 기도에 전념하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최고 의회와 감옥에서 풀려난 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들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박해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박해하는 이들에게서 안전하기를 바라기보다 오히려 박해의 위협에도 자신들 안에서 하느님의 일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의 시편은 바로 이들 교회 공동체가 박해를 각오하면서 바친 기도 속에서 따온 노래입니다. “주님, 당신께 피신하는 이 모두 행복하옵니다.” 그렇다면 박해받으면서도 기도에 전념하며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던 초대 교회 공동체 신자들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강조하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이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담대함’이란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낸다는 말이기에 복음을 전하는 이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담대하지 않으면 진리 앞에서 자신을 감추려고 합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박해의 위협에서도 담대히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첫 신자들은, 박해의 두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며 담대히 주님의 말씀을 전한 부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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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해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육의 욕망은 하강기류고 영의 욕망은 상승기류다>
 
복음: 요한 3,1-8
 
2008년 7월 어느 날 아침, 자포자기한 듯한 남자가 웨일스의 서부 해안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긴급 구호 번호를 돌렸습니다.
“내가 집사람을 죽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침입한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랑 싸웠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턴이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브라이언 토머스는 몽유병 환자였습니다. 평소에도 침대에서 나와 집 안을 걸어 다니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았고 심지어 뭔가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깨어나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토머스의 어머니에게 그가 잠옷 바람으로 잔디밭을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냥 습관이라고 대답하고 넘기고는 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도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사건 당일도 토머스 부부는 밴을 가지고 캠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밴에서 자려고 할 때 캠프장 주변에서 젊은이들이 요란하게 자동차 경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청바지를 입고 검은 재킷을 입은 청년이 캠핑카 안으로 들어와 아내를 덮친 것이었습니다. 토머스는 그 청년의 목을 잡고 아내에게서 떼어내려 했습니다. 그 청년은 토머스의 팔을 할퀴며 반격했지만 그럴수록 토머스는 더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그 청년이 절대 움직이지 않았고 그때 잠을 깨게 된 것입니다. 자신 앞에는 자신이 목 졸라 죽인 아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참조: 「습관의 힘; Part 3 사회의 습관」, 찰스 두히그, 갤리온]
 
우리 안에는 통제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를 육체의 욕망이라고 합니다. 이 욕망에 자신을 맡기면 나중엔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고 맙니다. 같은 책에 ‘앤지 바크만’이란 여자도 나오는데 그녀는 도박의 바람에 자신을 맡겼다가 부모의 유산까지도 더 잃고 빚쟁이로 남게 된 사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상승기류의 바람, 혹은 하강기류의 바람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욕망에 자신을 맡기면 하강기류에 맡기는 것이고,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면 상승기류에 맡기는 것입니다. 육체와 영의 두 욕구에 동시에 자신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육체의 욕구에 자신을 맡기는 삶에서 영의 욕구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으로의 전환을 ‘새로 남’이라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것보다 “새로 남”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니코데모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 남은 ‘영’으로 새로 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십니다. 영으로 새로 난 사람들은 마치 바람에 자신을 맡긴 돛단배처럼 영의 욕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의 바람에 휩쓸리고 영으로 난 사람은 성령의 바람에 휩쓸립니다.

그런데 영으로 난 사람은 위로 올라갑니다. 이 때문에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오른 이유는 성령의 이끌림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의 바람에 휩쓸려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 12월 22일, 흥남철수작전 때 정원이 60명인 배에는 선장 레너드 라루 선장을 비롯한 47명이 이미 승선해 있었습니다. 끝없는 피난민들을 바라보던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물자와 무기 25만 톤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피난민들도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버리며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16시간 동안의 탑승으로 총 14,000여 명이 배에 탑승합니다. 사람 무게만 700여 톤에 이르고 정원의 230배에 달하는 인원이었습니다. 바닷속의 수천 개의 기뢰의 위험과 추위, 배고픔과 공포 속에서 사흘을 항해한 끝에 5명의 신생아가 탄생하였고 12월 25일 거제도 항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도착하였습니다. 빅토리아호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제독을 설득시켜 끝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 했던 빅토리아호 레너드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 후 1954년 마리누스로 이름을 바꾸고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그는 이 철수작전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추측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그 바람의 방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루 선장이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수도원 동료들은 그가 14,000명을 구한 영웅인지 대부분 몰랐다고 합니다. 미국 교회는 그를 성인품에 추대하기 위해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마리누스는 바다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도 어느 바람에 자신을 맡길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 태어남의 시작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https://youtu.be/0lbhKhsOk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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