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부활 제2주일 (2020.4.19.)
[묵상]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부활 제2주일 (2020.4.19.)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였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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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체험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사가 요한 사도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상처 입은 몸에 시선을 모으며 주님의 부활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스승의 죽음으로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시어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며 죄의 용서를 위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신 첫 사람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으시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신 것처럼(창세 1,27; 2,7 참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첫 창조에 견주면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 창조의 특권은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현장에 없었던 토마스는 동료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문이 잠긴 집 안에 모인 제자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시어 토마스를 부르십니다. 요한은 토마스가 원하는 대로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직접 만져 보고 눈으로 확인하였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신앙 고백만을 전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의심 많았던 토마스를 조용히 꾸짖으시고, 육체의 눈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살아가게 될 세대들에게 행복 선언을 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은 그 본연의 목적대로 하느님을 닮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닮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부활을 지금 우리 안에서 되살리며, 두려움으로 꼭꼭 닫아 버린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받아 죄의 용서를 전하는 것입니다.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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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해 부활 제2주일
<예수님은 믿는 이들 가운데 계신다>
복음: 요한 20,19-31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떠한 방법이 가장 좋을까요? 사향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평생을 떠돌다 죽기 직전에야 사향 냄새가 나는 곳은 자신의 몸이었음을 깨닫게 된 사향 사슴과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복음은 명확히 주님께서 어디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지 알려줍니다.
제가 동기 신부의 아버지가 가스 폭발사고로 사망하였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그와 비슷한 체험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안산에 있는 모 성당의 총회장 딸인데 수련회에 갔다가 세 명이 익사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일가족의 마음을 생각하여 시신을 영안실에 안치하지 않고 하루동안 중환자실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 성당 모든 신자가 병원 복도에서 밤새도록 아이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이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왔고 왠지 아이가 살아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자들은 더 열심히 기도했고 아침이 되자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기도를 받은 아이만 살았고 나머지 두 아이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청년이 되어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몇 시간 동안 죽었다가 깨어나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도 기적일 것입니다.
만약 믿음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 시간에 어디에 있었어야 할까요? 그런 부활의 믿음을 가진 이들 가운데 있었다면 그 사람도 그들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혼자 하느님의 존재를 찾겠다고 아무리 돌아다녀 봐야 그곳에 함께 있었다면 얻을 수 있는 믿음에는 도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하나 찾으라면 ‘머무름’입니다. 요한도 예수님과 하루를 머물면서 믿게 되었습니다. 또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꼭 붙어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은 토마스 사도가 어떻게 부활의 믿음에 도달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나머지 열 사도가 부활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들과 함께 머물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으면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혼자만 예수님을 못 만난 상태에서 그분을 만난 이들 가운데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의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의지에 보답하여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이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들, 혹은 당신을 사랑하여 무덤까지 찾아간 이들, 혹은 그들의 증언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이들, 그리고 마지막엔 그런 믿음이 모이는 교회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결코, 토마스 사도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시거나 당신을 죽인 이들을 찾아가서 당신 부활을 확증해 주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믿지 않는 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뜨거워지려면 뜨거운 것들이 모인 안으로 들어가면 되듯, 믿으려면 믿음이 모인 이들 가운데 머물면 됩니다.
페데리코를 만난 것은 체나콜로라고 하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센터에서였습니다. 어머니의 강요로 석 달만 들어가 있으려고 했는데 제가 방문했을 때 그는 벌써 삼 년을 그 공동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약물이나 알코올을 몰래 하지 못하게 하려고 선배가 화장실까지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처음엔 자신을 감시하는 선배가 죽일 듯이 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성당에서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을 때 생전 처음 느껴보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팔짱을 끼고 미사 때도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믿음 안에 자신을 결합하니 평화라는 이름으로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함께 계십니다. 오늘 당신께서 나타나셔서 토마스 사도가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십니다. 당신 옆구리와 손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도들만이 있을 때 토마스가 한 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에 알코올 중독자 존의 사례가 나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운전하다가 아들을 다치게 한 존도 13개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참석하여 술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그렇게 2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망에 대한 충격으로 다시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이번엔 아들을 아주 잃을 뻔하였습니다.
그는 공동체의 힘을 깨닫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다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뜻대로 절제할 수 있는 것 같은 자신감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내 삶을 결정하는 더 높은 힘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떠한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나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어보려 했고 그러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존재가 하느님인지 아니면 다른 신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이후로 7년 동안 술을 끊고 지내는 데 도움을 준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그리고 그 존재를 공경하면서 두려워합니다.”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믿음을 반드시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 그 공동체에 들어가면 그 믿음을 흡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인 AA는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해 ‘신’의 존재를 믿도록 유도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나눔에는 신과 영성이란 단어가 끊임없이 언급됩니다. 믿어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공동체’에 머물러 있을 때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탈출할 수 없는 심각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더 완전하게 살아 숨 쉽니다.
‘알코올 연구 집단’(A.R.G.)의 선임 연구원 리 앤 카스쿠타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AA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방을 둘러보며 ‘이 방법이 저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었다면 나한테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모임에 참석해서 서로 경험을 나누는 것이 효과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혼자 지내면 자신이 변할 수 있을까 의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임은 그런 의혹을 억누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요컨대 공동체가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예수님은 당신 부활에 대한 믿음이 교회 공동체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사정상 공동체가 함께 모일 기회가 상당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평화방송이나 유튜브, 혹은 이런 글을 통해 만나지 못해도 교회의 일원임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성체도 소중하지만 그 성체의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공동체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성장시켜 왔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가 아니라 둘이나 셋이라도 이미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영상 음악피정]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하느님의 자비주일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미사 때마다 바치는 저희 기도를
늘 풍요롭게 이루어주시는 주님이시오니
오늘도 저희 믿음의 길은
주님 자비의 향기를 나누는
아름다운 꽃길이게 하소서.
아멘 ♡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없지만
짧은 영상음악피정을 통해
주님의 자비하심에 머물며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묵상과 찬양의 시간되시길 바라며
모든 교우님과 나눕니다.
박유진 바오로 신부
부활피정 묵상 - 하느님의 자비 주일
음악 1 이날은 주의 날 - YCL
음악 2 살아 계신 주 - 인순이
음악 3 강 건너 봄이 오듯 - 3 테너 / 김성진 이병삼 허동권
(2013년 한국 가톨릭 문화원 아트센터 3테너 초청연주회 중)
https://youtu.be/yydkUhx3g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