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마태오 1,18-25) - 주님 성탄 대축일 - 전야 미사 (2024.12.24.)
[묵상]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마태오 1,18-25) - 주님 성탄 대축일 - 전야 미사 (2024.12.24.)
주님 성탄 대축일, 참으로 기쁜 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군대와 함께 기뻐하며 노래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5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선한 의지’가 도대체 무엇일까? >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성야 미사에서는 목동들이 천사들에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란 말을 듣습니다. 여기에는 그들만이 아기 예수님을 뵐 자격이 있음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란 말 안에는 무슨 일을 해서 마음에 들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가톨릭의 전통적 해석,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 곧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직역이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란 의미는 의역이고 현대 신학자들의 합의에 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번역된 데에는 “선한 의지”란 단어의 뜻의 중요성을 번역하면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한 의지’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의지와 욕구를 발휘합니다. 그중에 선한 의지도 있고 악한 의지도 있다는 뜻입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격리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새끼 원숭이가 젖이 나오는 철사 어미보다는 젖이 나오지 않아도 따듯함을 주는 인형 어미를 어미로 인정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이것이 선한 의지입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어머니의 냉대 속에서 자랐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고 우울감입니다. 태어나면 아기들은 다 선한 의지를 가집니다. 젖을 먹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엄마를 찾으려는 의지입니다. 엄마를 찾지 못하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서 엄마보다는 엄마 젖을 더 추구하게 됩니다. 선한 의지가 오염이 되는 것입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원숭이 새끼들을 일부러 어미와 격리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며 발견한 것은 새끼 원숭이들은 먹이와 편한 시설이 아닌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줄 어미를 찾고 무리를 찾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덕분으로 할로우 박사는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치유하는 길은 사랑받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기처럼 사랑만을 요구하는 남자와 사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첫 번째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이혼하고 맙니다. 할로우 박사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사랑을 만났습니다. 이때 ‘구원자 원숭이’의 개념을 발견하게 됩니다. 격리 6개월이 안 된 원숭이들은 정기적으로 다른 무리의 원숭이들과 사귀다 보면 우울증이 사라진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부인도 두 아이를 낳고는 암으로 사망합니다. 인간으로는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전기충격으로 우울증을 극복해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첫 번째 아내와 재혼했지만, 상태는 계속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실험실의 원숭이들을 학대했다는 비난 속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알았습니다. 사랑으로 상처받은 자신은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음을. 그러나 ‘착한 뜻’은 아니었습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는 주인공은 한 스승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에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를 보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나를 창조한 엄마처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을 사람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아기들은 착한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오늘 복음의 목자들은 착한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면 정체성이 생긴 것입니다. 엄마를 만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엄마는 나를 창조하여 나에게 생명과 같은 젖을 주는 존재입니다. 이 착한 뜻을 가졌기에 그들에게 메시아의 표징이 구유에 뉜 아기였던 것입니다. 밥은 곧 생명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생명을 양식으로 내어주시면 자신들은 자녀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만을 찾기를 원하는 이들이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누구를 구원하실까요? 아기처럼 엄마를 찾지 않으면 죽는 게 낫다는 착한 뜻을 가진 이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어떤 이들은 돈으로 가난에서 구원되려고 하고 먹는 것으로 배고픔에서 구원되려 합니다. 그렇게는 메시아를 만나지 못합니다. 착한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이처럼 세상없어도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메시아만을 찾는 착한 뜻이 있나요? 그러면 오늘 밤에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선한 의지는 구원자를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https://youtu.be/IvfRwQqt1po?si=1nE3b54qmCpb_d4k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카 1,79
To shine on those who sit in darkness and death's shadow to guide our feet into the path of peace. Lk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