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

[묵상]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 9,57-62) -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2022.9.28.)

honephil 2022. 9. 28. 06:00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참된 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목 하시던 시절,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뼛속까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나 이 세상

좋은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눈을 뜨나 감으나

가난한 사람들 생각뿐입니다. 그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낸다거나 휴가를 가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신학교 학장 시절, 여름 방학이 오면, 동료 교수들이며,

직원들이며, 신학생들이 모두 장기 휴가를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신학교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시간을

이용해서 밀린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가장 좋은 휴가라고 했습니다.

 

3년여 전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한 달 간의 휴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 성지순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지만, 숙소 문제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날은 고마운 지인 댁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어떤 날은 텐트를 치고 잤습니다.

어떤 날은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아주 좋은 장소가 눈에 띄어, 텐트를 치고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주인이라는 분이 나타나셔서,

당장 나가라시더군요. 한밤 중에 주섬주섬 텐트를 걷는데

기분이 참 거시기하더군요. 당시 나만의 공간이 따로

마련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그 작은 공간마저 포기하라시니,

너무하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안정된 주거

조건 속에서 복음 선포 활동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떠돌아다니셨습니다. 나자렛을 떠나 카파르나움으로,

카파르나움에서 베타니아로, 베타니아에서 예리코로,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그렇게 떠돌고 계시던 예수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  말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 복음 9장 5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아주 특별한 말씀,

무척이나 알쏭달쏭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씀,

꽤나 슬픈 말씀을 건네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루카 복음 9장 58절)

 

공생활 기간 내내 펼쳐진 예수님의 행적을 뒤따라가 보니,

예수님 말씀은 정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 오래

머무신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꼭 붙들 때마다,

나는 다른 고을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 다시며, 결연히

팔을 뿌리치며,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니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기간 내내

유다 광야의 여우 한 마리, 갈릴래아 호숫가 나무 위에

깃들며 살던 하늘의 새 한 마리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이었더라면,

경치 좋고 기후도 좋은 갈릴래아 호숫가에 커다란 대저택

하나를 짓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고통받은 백성들을 당신의 발로 직접 찾아다니셨습니다.

당신 치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방문하셨습니다. 당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양 떼를

찾아가기 위해 떠돌이 생활, 노숙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놀랍게도 공생활 여정의 마지막 순간에도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당신 사명의 종착지인 골고타

언덕 십자가 위에서 의미심장한 예언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통상 임종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던 방에서,

그게 아니라면 병원 침대 위에서 머리를 바닥에 대고

세상을 뜹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공중에서, 그 어디에도, 그 존귀한 당신의 머리를 대지

못한 채, 그렇게 운명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 내 내는 물론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놀라운 청빈과 겸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추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부단히 자신만의 왕국,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을

포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언제든 어디로든

기꺼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루카 9,60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But you, go and proclaim the kingdom of God. Lk 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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